모든 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이 오기 전, 고요한 숲 어귀나 바닷가 언덕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붉은 존재가 있다. 향기는 없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함. 바로 동백꽃이다.
겨울이 아직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2월, 세상은 바람이 차고 나뭇잎은 메말라 있다. 그러나 동백은 그런 계절의 끝자락을 무릅쓰고 조용히 피어난다. 그것도, 끝까지 나무에 매달리다 문득 '툭' 하고 떨어지는 방식으로. 흔한 꽃잎 날림도 없다. 찬란하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오래 눈에 남는 꽃. 한 편의 시처럼 조용히, 그 존재를 증명한다.
동백은 마치 견딘다는 것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계절에 피어나, 누구보다 고요하게 아름다움을 완성해내는 존재. 그 모습에서 우리는 작고 사소한 일상 속 위로를 발견하게 된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너는 네 계절에 피어나면 된다’는 말을 대신해주는 것만 같다.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은 날, 우리는 동백을 떠올린다.
문학과 음악 속에서 동백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 외로운 기다림을 이야기할 때, 혹은 말하지 못한 진심을 담아낼 때. 동백은 그 모든 감정의 그릇이 되어준다.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 속 장난기 어린 소년의 감정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속 애절한 여인의 마음도 결국은 이 꽃의 얼굴 위에 녹아든다.
어느덧 5월이다. 동백은 이제 그 모습을 감추고 계절의 뒷자리에 물러섰다. 그러나 그 붉은 흔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미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잊혀지지 않는 얼굴처럼, 지나간 감정처럼.
계절은 계속 흐르고, 동백은 또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익숙한 바람 속에서, 낯익은 언덕 위에서. 그리고 또 한 번, 조용한 위로가 되어 말을 걸어올 것이다.
"괜찮아. 너는 너대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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